흔한 게 한식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보기도 좋고, 맛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한식집은 흔치 않다. 한식보다는 양식을 선호하지만, 그래도 종로 쪽에 오면 동네 분위기랑 어울리게 한식을 먹어보고도 싶은데,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는 게 또 쉽지 않다.
이런저런 검색 채널들을 전전하다가 결국 캐치테이블에서 발견한 애호락. 애호박요리를 전면에 내세운 한식집이다. 예약이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주말 저녁 한창 시간엔 예약 없이 그냥 방문하면 헛걸음하기 십상이니 방문하고 예약하는 게 여러모로 마음 편하다. 두세 번 즉흥적으로 가보려다가 실패한 경험의 교훈이랄까 ㅎㅎ
캐치테이블에서 애호락 예약하기 ☞ https://app.catchtable.co.kr/ct/shop/aehorak
언젠가 잘 먹었던 계동의 밀양손만두가 어디로 갔나 했더니, 애호락 바로 아래 있었다. 여기도 한 번 가봐야 하는데...
2014.06.06 - [食食 얌냠] - (이전) 밀양손만두 - 고기만두 + 얼큰칼제비 + 공기밥
한식이라고 항상 투박해야 하는 건 아닌데 종로 쪽에 있는 노포들은 음식을 털퍼덕 내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건 그거대로 맛이 있지만, 매번 그런 건 좀.. 그런데 또 예쁘게 담았다고 맛이 애매하거나 가격이 너무 비싸도 서운하다. 그런 아쉬움을 모두 달래주리란 기대를 안고 입장.
2층 애호락 입구. 밖에서 당겨서 여는 미닫이 철문인데, 열고 들어가 손잡이를 놓으면 안팎으로 크게 움직이더라. 재빨리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서성이다간 문에 맞을 수도 있으니 주의요망.
가게 내부의 첫인상은 좀 어정쩡했다. 한식보다는 파스타 같은 걸 저렴하게 팔 것 같은 분위기랄까?
맞은편으로는 이런 자리도 있는데, 술이랑 잔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루트는 왜 저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이번 달에 갔을 땐 입구 근처에 있는 4인 테이블에 앉았다. 가게 조명이 노란끼가 강해서 저녁때 가면 온통 노랗다.
애호락에서 술을 병으로 시키면 이렇게 잔이 잔뜩 담긴 접시를 가져와서 원하는 잔을 고르라고 하신다.
그냥 모양을 보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골랐는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오른쪽에 민트 빛에 무늬가 들어간 술잔이 이강주 잔이었다. 알았으면 저걸 고르는 건데... 진짜 딱 전용잔이 있을 줄은 몰랐지.
내가 골랐던 잔들. 처음엔 얕고 넓고 얕은 잔, 이번엔 작고 동글동글 오동통한 잔으로 골랐다. 이번에 고른 잔은 문배술 잔이었다.
명인 안동소주 (안동) 360㎖ (22%) 12,000원. 작년엔 9,000원. 박재서 명인이 안동의 물과 쌀을 원료로 빚어낸 증류주. 깊은 감칠맛.
희석식 소주와 달리 알코올 자체의 역한 맛이 올라오는 건 아니지만, 증류식 소주는 누룩향이 센 경우가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강주 (전주) 375㎖ (19%) 15,000원. 작년엔 13,000원. 조선시대 3대명주 직접 만든 소주에 배와 생강이 들어간 증류주. 매콤하고 감칠맛.
누룩 향이 강했다. 생강이 눌러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알싸한 느낌이 더해질 뿐이었다. 증류식 소주는 내 취향이 아닌 모양이다.
진저에일 2,000원
캐나다 드라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생강이 든 전통주라 진저에일과 섞어 마시면 괜찮겠다 싶어 시켜봤다. 덕분에 조금은 더 마실 수 있었다.
잔술 (하우스막걸리 또는 전통주) 1500원. 작년엔 1,000원
하우스막걸리는 많이 시지 않고 적당히 달달하고 깔끔했다. 이번에 주문했던 전통주 잔술은 안동소주였다. 요즘은 캔 음료도 천 원으로 먹을 수가 없는데, 술을 천 원에 판다는 게 퍽 놀라웠다.
애호락 메뉴판 최신판.
세트메뉴와 코스도 있는데, 코스는 4인이상만 가능하단다. 이것저것 다 먹고 싶을 때 딱일 것 같은데, 그러려면 친구를 모아서 와야겠다.
술값은 전반적으로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평범한 수준. 음식값만 오른 줄 알았는데, 이번에 확인해 보니 주류 가격도 오른 메뉴들이 제법 있더라. 소주, 맥주, 막걸리 등 일반적인 술들 가격은 그대로긴 한 듯.
처음 왔을 땐 왼쪽에 보이는 것처럼 "특선 식사"라고 해서 공깃밥무한 메뉴들이 있었는데, 이제 밥을 그냥 주는 구성은 없는 것 같다. 온통 다 밥반찬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싱가용 (T^T)
특선 식사 (셋트별 2인이상 주문가능) 하나. 애호박찌개 + 보쌈 수육 + 가마솥손두부 + 공기밥 무한, 1인 12,500원. 지금은 없는 구성 / 추가메뉴 돼가리편육 8,000원. 현재 단품 가격은 13,000원
가장 다양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조합으로,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게 시켜보자 해서 만든 한 상.
보쌈 수육. 각종야채와 시골된장에 푹 삶아 숙성된 맛있는 보쌈
애호박찌개. 국내산태양초 국내산암퇘지를 고기듬뿍 애호박듬뿍
아기자기하고 단정하게 차려낸 한식 밥상. 반찬도 딱 먹을만한 것들로만 적당히 나와서 좋다. 깔끔하게 잘 삶아낸 돼지고기 수육이었다.
돼가리 편육. 국내산돈두육을 잡내없이 삶아내어 살코기비중을 높여 발골! 부드럽고 쫄깃쫀득 식감
가마솥손두부 100% 국내산콩 뜨끈뜨끈 손두부
깔끔한 편육과 따끈하고 고소한 손두부. 엄청나게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생각나는 음식들이다.
애호락 돼지 삼총사 (보쌈수육 + 아바이순대 + 머리고기편육) 25,000원. 수육과 편육, 그리고 큰대창을 사용해 찹쌀, 고기, 야채 등 풍성하게 넣어 녹진한 맛이 일품인 별미인 속초 아바이순대가 함께 나오는 한 접시.
메뉴 이름이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잔인한 것 같기도 한 "애호락 돼지 삼총사" 앞서 봤던 수육과 편육에 순대를 더한 메뉴. 이런 순대다운 순대를 버거워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고기들이랑 함께 나오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부드러운 야채 순대와 잡내 없이 잘 삶은 고기, 단단 쫄깃한 편육을 번갈아 먹을 수 있어 좋다.
국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애호박찌개 뚝배기를 추가했다.
애호박돼지찌개 (찌개뚝배기) 사이드 9,000원.
애호박을 도톰하게 채 썰어 넣은 애호박찌개. 돼지고기도 덩어리 덩어리 들어있다. 고추장찌개 원래 안 좋아하는데, 이렇게 먹으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 빨갛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맛.
한상차림 셋트 - 커플 & 우정셋트 하나 : 속초반건조생선구이 + 돼가리편육 + 애호박찌개, 48,000원
지각한 생선구이 덕에 밥상 미관이 다소 훼손되고 말았다. 하지만 음식을 앞에 두고 메인이 나올 때까지 멀뚱멀뚱 손 놓고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난 먹으러 온 거지, 사진을 찍으러 온 게 아니니까 ;q
가장 먼저 나온 돼가리 편육. 아니, 편육이 이렇게 정갈할 일이냐고 ㅋ
고기 비율이 조금 아쉬웠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이번에 먹었던 애호박찌개는 평소보다 더 푹푹 잘 끓여냈는지 이가 없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뭉근한 느낌이라 더더욱 밥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ㅅ@)
속초 반건조생선구이 2종 (뽈락 X 임연수) 28000원. 속초현지에서 셋째이모님이 반건조하여 일주일에 3번 직송으로 올려주심
메뉴 설명에 이모님이 보내주신다고 해서, 왠지 별로여도 별로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ㅋㅋ 집게와 가위를 들고 씨름하고 있었더니 사장님께서 오셔서 싹둑싹둑 썰어주셨다. 임연수는 비늘이 없어서 껍질이 별미라는 설명도 곁들여주셨다. 말린 생선보단 기름진 생물 생선구이가 취향이긴 하다.
밥을 주문했더니 양념장이 필요하면 얘기해 달라 하시기에 말씀드렸더니 주신 양념장. 매콤하다고 하셨는데, 참기름이 많이 들어가서 생선을 찍어 먹기엔 생선 맛이 가려서 아쉬웠다. 참기름은 안 넣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공기밥 1,000원
이게 결국 못 참고 시켜버린 공깃밥. 반찬이 한가득인데 밥이 없다니, 고문이지 (ㅠㅁㅠ) 밥 한 숟가락에 고기도 얹어 먹고, 생선도 얹어 먹고, 물 말아서 또 생선구이도 얹어 먹고, 알차게 비워냈다.
다음에는 전도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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