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책}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잠들어야만 입장 가능합니다

文化 우와

by 눈뜨 2022. 4. 8. 20:00

본문

언젠가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놓여있는 걸 본 적이 있었던 "달러구트 꿈 백화점". 뭔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풍기는 일러스트에, 누가 보더라도 국산이 아님이 틀림없는 이름이 백화점 앞에 붙어 있어서,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외국 작가의 판타지 소설이려니 했었다. 새삼 이제는 어른들도 이런 책을 많이 본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러고는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우연히 갑작스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버렸다.
짧게 생긴 여유시간엔 그냥 늘어지기 마련인데, 그 시간이 좀 길어지려니 '모처럼 책이나 읽어볼까?' 싶었고, 전자책을 뒤적여 봤다. 그저 취미로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라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했다. 학창 시절 취미란을 채워줬던 단어가 독서였다. 실제로 책을 즐겨 읽는다기보단 그 행위를 딱히 싫어하진 않는 정도였지만, 그 정도면 갖다 붙일 수 있는 중 가장 무난하고 그럴싸한 취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그나마 이동진 평론가가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할 땐 귀동냥으로나마 책에 관한 정보들을 이것저것 얻을 수 있었는데, 방송이 없어지고는 독서라는 것과 연이 끊어져버렸다. 그래서 책 제목으로 고르는 건 포기하고, 몇 안 되는 아는 작가 이름을 쳐 보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고른 책이 "본국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있는 프랑스 작가"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이었다. 상상력이 무에 가까운 문충이인 내게 과학을 기초로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시선과 상상력은 굉장히 신선했던 기억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수면의 단계를 넘나들며 잠과 꿈을 이용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발상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극한의 사건들과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닥치는 비극과 위기가 마음 한 구석을 답답하게 했고, 점점 지치게 만들더니, 결국엔 책장을 더 넘기고 싶지 않아져 버렸다. 그때 인터넷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 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눈에 들어왔다. 놀라운 사실은 예전에 서점에서 봤던 그 책이 아니고, 책 제목 뒤에 숫자 2가 붙어 있었다. 얼마나 잘 됐으면 책이 2편이 나왔을까? 놀라운 사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책 서두에는 주인공인 페니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취직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데, 상점가의 모습이나 캐릭터들 설명이 판타지 영화의 시작 장면이 그려지는 듯 펼쳐진다. 그래서 혹시 원작이나 이걸로 만든 영상물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검색해 봤는데,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오는 손님 이름이 전혀 어색한 부분 없이 너무 제대로 된 한국식 이름이라, '요즘엔 등장인물 이름도 나라마다 맞춰서 번역을 하나보다' 싶었는데, 작가가 한국사람이었다. 주인공을 비롯해서 백화점 직원들, 그 동네 주민들이 다 외국 이름이라 당연히 외국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사람이 쓴 한국소설이었던 것.


이 책은 꿈을 파는 백화점에서 그 꿈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무언가를 남긴다는 점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잠"과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는 뻔한 것 같은 내용을 좀 더 귀엽고, 발랄하게 풀어낸다. 찌푸려지는 부분 없이 가볍게 그 내용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어렵지 않게 책 한 권을 다 읽어낼 수 있었다. 나는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유치한 것 보다는 진지하고 담백한 걸 선호한다. 이 소설은 뻔한 구석이 있고,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상 만화적 상상력 같은 부분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도 결과가 미리 짐작되는데도 풀어내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고, 표현하는 방법이 흥미로웠다. 나이가 들어 유해진 덕인지, 어딘가 말랑해지는 듯한 기분이 썩 유쾌했다.
전자책은 마구 대출이 될 것 같은데 대출권수 제한이 있더라. 1권도 예약하기를 눌러뒀더니 어느 날 갑자기 대뜸 읽으라며 내서재에 들어왔다. 2권은 언제 들어오려나~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