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おまかせ)"란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일본식 코스요리"를 일컫는 단어였지만, 근자에 우리나라에서는 양식이 아닌 코스요리를 일컫는 말이 된 것 같다. 한식이 가미된 경우엔 이왕이면 "맡김차림"이라고 표기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거야 파는 사람 마음이니... 어쨌든 대표적인 게 소고기 코스요리인 우마카세와 돼지고기 코스요리인 돈마카세인데, 어류보단 육류파인 나로서는 굉장히 환영할 만한 세태다.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돼지굴. 그래도 업종 자체가 비교적 최근 감성인 돈마카세집인데 언뜻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어두운 벽돌 건물에 있는 게 영 어색했다. 바로 아래에 삼겹살집이 있는 건 더 신기 ㅋㅋ
지도로 보면 메세나폴리스나 홍대쪽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이라 이상한 데다 싶지만, 은근 여기에 식당이나 술집들이 많다. 옥동식이나 최강금돈까스도 이 근처고, 돼지굴 바로 옆 건물 1층엔 줄 서 먹는 함박집, 함반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 오는 토요일 점심, 예약시간에 딱 맞춰 식당 도착. 예약은 캐치테이블에서 가능하다.
캐치테이블에서 돼지굴 예약하기 ☞ https://app.catchtable.co.kr/ct/shop/pigcave
예약이 어렵진 않다. 지금 예약하면 다음주 바로 방문 가능. 평일엔 저녁만 하고, 주말엔 점심과 저녁 모두 하는 모양이다.
뭔가 사장님 취향으로 채운 듯한 공간. 취식공간은 따로 테이블은 없고, 바 자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냐옹지마보다 수용인원이 적을 듯. 이 날은 총 9명 쯤이었던 것 같다.
2022.08.02 - [食食 얌냠] - 냐옹지마 - 사시미모리아와세 + 생참치 사시미 + 초밥5피스 + 민물장어 꼬치구이 + 중화면 + 금태반마리 구이 / 스윗마마 + 댄싱파파 + 참이슬 + 카스병맥주
그러고 보니 냐옹지마도 이젠 현장 줄 서기 대신 캐치테이블 예약 시스템을 도입했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해당 주 예약을 받는데, 자꾸 10시 넘어서 생각나서 실패 ㅋㅋ 월요일 아침은 바쁘다구.
(낫프리한 도비들 배려 좀...)
돼지굴에서 우리가 앉은 자린 주방 입구를 마주 보는 위치였다. 오른쪽 민머리 아저씨 사진 아래로 갖가지 술병들이 놓여 있었는데, 전통주가 상당수 보여서 반가웠다. 그동안 전통주 갤러리 문턱이 닳게 드나든 성과랄까 ㅋ 물론 맛이 다 기억나진 않는다.
2020.08.24 - [文化 우와] - {놀이문화} 전통주 갤러리 The Sool Gallery - 상설시음회 등
2023.02.23 - [文化 우와] - {놀이문화} 전통주 갤러리 THE SOOL GALLERY - 2022년 6월 및 2023년 2월 상설시음회
2023.03.11 - [雜談 주절/移動 모발 (mobile)] - 전통주갤러리 2023년 3월 상설시음회
실제로는 더 많이 갔지만 포스팅한 건 세 개 정도. 처음 한 건 강남역에 있던 시절이고, 두 번째랑 마지막에 모바일로 한 건 현 위치인 안국역 버전이다. 지난 토요일에도 다녀온 건 안 비밀 ㅋㅋ
델몬트 유리병엔 차가운 보리차가 국룰인데 ㅋㅋ 돼지굴답게 돼지소품이 시강이었다.
돈마카세집답게 음식 메뉴판은 오마카세 구성을 설명하는 이게 전부였다. 일단 이 틀로 가고 세부적인 건 상황에 따라 바뀌나 보다. 가격은 점심이나 저녁이나 동일한 모양. 보통 식당들은 점심때 할인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점심과 저녁 가격이 같은 집은 점심때 오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다. 그치만 점심 가격으로도 나쁜 편은 아니라, 저녁에 오면 개이득 느낌일 듯 ㅋ
음식 메뉴판보다 훨씬 화려한 돼지굴의 음료 메뉴판. 주류는 잔으로 파는 것도 있고, 병으로만 파는 것도 있다. 인당 2만 5천 원에 주류 페어링 메뉴도 있는 것 같았는데, 증류주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나는 별로일 것 같다. 술은 달다구리 시원한 게 맛있지.
예사롭지 않던 현란한 손놀림. 돼지고깃집에 점심 먹으러 왔는데 바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이게 낮 12신지, 밤 12신지 ㅋㅋ
하이볼/칵테일 - 두레앙 거봉 하이볼 12,000원, 부자 진 토닉 12,000원
추사 사과 하이볼과 경합 끝에 선택받은 두레앙 거봉 하이볼. 새빨간 하트모양 빨대도 챙겨주셨다.
브랜디 - 두레앙 목통 ALC.35% 거봉으로 만든 브랜디 두통을 유발하는 초류와 후류를 제거해 깔끔한 맛. 오크통 숙성으로 오크향과 묵직한 바디감이 일품 / 부자진 ALC.44% 아버지와 아들이 만든 한국형 크래프트 진. 국산 소나무와 헛개, 한라봉, 쑥 등 15가지의 재료로 풍성한 맛.
하이볼이나 칵테일을 주문하면 병 구경은 못 하는 게 아쉬운데, 이렇게 실컷 보라고 자리 앞에 보기 좋게 올려 주신다. 잔술 시켰을 때 이렇게 병 갖다 주시는 거 좋아요 (>0<)bb 당연히 상큼하고 달달한 두레앙 하이볼이 내 취향이었다. 일단 술 설명에 "오크"가 들어가면 나한텐 먹고 들어가는 편이기도 하니까 ㅋ 부자진은 설명에 나열된 단어들만 보더라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다. 원래 진 자체도 안 좋아하는데, 재료가 솔과 헛개라니... 싫어하는 걸 두 개나 더해놨다. 거기에 토닉을 넣어봤자 ㅎㅎ 두레앙을 잔술로 팔았으면 먹어봤을 텐데, 아쉽게도 추사만 잔술을 팔더라.
돼지굴 오마카세 35,000원/인 = 스프 + 샐러드 + 수육 + 튀김 + 구이 + 미니버거 + 밥 + 디저트, 총 8코스. 구성 메뉴 추가 주문 가능, 식사시간은 90분.
가지런히 차려진 밥상에 가장 먼저 등장한 건 스프였다.
1. 스프 - 옥수수스프
살짝 아삭거리는 식감이 있는 옥수수 스프. 비 오는 날 식전에 호로록 비워내기 좋은 전채였다.
2. 샐러드 -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돼지고기 안심을 곁들인 오리엔탈 드레싱의 샐러드
부드러운 안심을 얹은 잎채소 샐러드. 수비드 한 안심이라 맛과 식감이 강하지 않으니 오리엔탈 드레싱 보다 좀 연한 드레싱을 곁들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큼직하고 부드러운 안심과 대비되도록 다진 야채들을 살사소스처럼 함께 먹게 나오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열심히 준비한 주재료가 묻히는 느낌이 아쉬웠다.
3. 수육 - 항정살 수육과 전라도 보쌈김치, 아몬드 쌈장, 편마늘, 풋고추, 배추, 상추
잡내 없이 삶은 수육에 감칠맛 폭발 김치, 아삭한 배추와 전통의 고소한 단짠 소스 쌈장까지.
배추에도 싸 먹고, 상추에도 야무지게 싸 먹었다. 밥이 없는 게 아쉬웠다. 쌈을 먹는데 밥이 없는 건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이걸 마지막 밥 나올 때까지 킵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많이도 말고 딱 한 스쿱만 주시면 안 되나 ㅎㅎ 수육에 깔린 상추를 다들 안 먹고 남긴다고 아쉬워하시더니, 최근 글을 보니 상추 대신 양배추 채를 깔기도 하는 것 같았다. 보기에도 그렇고, 맛도 상추나 깻잎이 좋은데... 전 쌈채에 한 표입니다.
막걸리 - 코리안 화이트15,000원. ALC.7% 맥주 효모가 들어간 샴페인과 막걸리의 어디쯤(?) 내추럴 와인같은 느낌을 주는 막걸리
막걸리답지 않게 암갈색 유리병에 담긴 코리안화이트. 용량도 330ml밖에 안 된다. 첫 잔은 맑게 마셔 보라 하셨다. 원래 막걸리 특유의 텁텁함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렇게 마시니 깔끔하고 좋았다. 잔도 그렇고 진짜 스파클링 와인 마시는 기분.
쌀, 포도당, 레몬, 정제효소, 효모, 정제수로 만들었다는 오티오티의 코리안화이트.
섞으면 이런 느낌. 역시 난 섞은 것보단 맑은 쪽 취향.
4. 튀김 - 소고기와 돼지고기, 양파 등을 섞어 동그랗게 빚어 바삭하게 튀겨낸 멘치까스와 데미그라소스
난 부먹보단 찍먹파지만, 소스와 잘 어울렸다. 어딘가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영양 간식 느낌이 난다.
5. 구이 - 직접 만든 베이컨 구이. 가니시로 구운 야채와 매시드 포테이토.
삼겹살 구인 줄 알았더니 직접 만든 베이컨이라고 하셨다. 같이 나온 구운 채소는 방울토마토와 연근, 애호박, 꽈리고추.
하나는 그냥 먹고, 하나는 레몬 살짝 해서 먹고, 나머지 하나는 매시드 포테이토까지 슥슥 해서 하압! 직원분 추천은 레몬 짜서 매시드 포테이토랑 야채랑 다 함께 먹는 거라고 하셨던 것 같다.
식사가 막바지로 갈 즈음 하얀 접시를 잔뜩 들고 나오셨다.
미니버거에 퍼포먼스 추가.
갑분 수제버거집 1열 직관.
6. 미니버거 - 수비드 해서 만든 목살 풀드포크를 넣은 미니 버거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지만, 풀드포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고기는 역시 덩어리지! 고기의 두께와 맛은 비례한다 ;)
7. 밥 - 차돌된장밥
술술 들어가는 된장밥. 차돌이 들긴 했지만 고기순이는 고기반찬과 먹고 싶어요. 수육을 킵하든, 얘 순서를 앞으로 땡기든 하고 싶다 (+_+)
8. 디저트 - 판나코타와 블루베리청
마무리는 우유푸딩인 판나코타.
돼지굴 오마카세는 내가 두 번째로 먹어 본 돈마카세다. 처음은 마곡의 돈탐구소. 둘을 비교해 보자면, 돼지굴은 돈탐구소에 비해서 친근했다. 분위기도 그랬고, 음식도 돈탐구소가 격식 있는 정찬 느낌이라면 돼지굴은 편안한 가정식 느낌.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이 가격에 이런 구성이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접근성도 괜찮고, 전통주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한국적인 메뉴를 함께 선보이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외국 술만 잔뜩 가져다 파는 걸 보면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식사였다. 난 여기 추천! 저녁이라면 더욱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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