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기름 막국수의 원조인 고기리 막국수. 개수리막국수 덕분에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가 볼 마음이 생겼다.
뚜벅이에겐 그리 호락호락한 위치는 아니지만, 갈 방법이 영 없는 것도 아니라 연휴를 맞이하여 도전해보기로 했다.
고기리 유원지에 위치한 고기리막국수. 개인적으로 "유원지"의 이미지는 월미도처럼 작은 놀이동산 같은 느낌인데, 처음 유원지라고 해서 갔는데 온통 산에, 고깃집뿐이라 '이건 뭔가?' 싶었다. 수원에 오래 살아서 유원지는 다 원천유원지 같은 줄 알았지. ㅋㅋ
대중교통으로 고기리막국수에 가는 방법은 지하철 분당선 미금역에서 14번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빨간 날 배차간격이 30분이라고 했는데, 일정하진 않은 것 같다. 회차지 근처라 그런지 정류장에 설치된 전광판에 표시되는 정보도 정확하지 않아서, 기다리다가 애매하게 택시를 잡아버린 바람에 버스는 구경만 하고 탈 수가 없었다. 미금역에서 식당까지 택시비는 8천 얼마 정도 나오더라.
차에서 내려 식당이 있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자 카페 같은 외양의 건물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11시 오픈이라고 했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이 꽤나 모여 있었다. 다시 봐도 막국수를 파는 식당으로 보이진 않는 비주얼. 제법 오래된 식당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외양이 의아했는데,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던 게 아니란다.
본모습은 이랬던 모양. 이 편이 더 포스가 있긴 하지만, 도로가 생기면서 이전한 거라니 별 수 없지.
식당 앞에 도착하니 벌써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주차장은 만차였고, "식사대기예상 1시간"이라는 안내 문구가 게시되어 있었다.
식당 입구를 중심으로 야외에 테이블 등 대기 공간을 마련해 뒀는데, 툇마루까지 이미 기다리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공식적인 영업시간은 수요일부터 월요일(화요일 휴무)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마지막 주문은 8시 20분)까지고, 4시부터 5시까지는 면솥 물 가는 시간이라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식당 입구 오른쪽 나즈막한 상 위에 놓인 대기 등록 태블릿 앞에서 "공휴일과 주말은 10시 40분"부터 영업을 시작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시 50분쯤 도착한 우리의 웨이팅 번호는 66번. 고기리막국수에서 사용하는 웨이팅 관리 서비스는 나우웨이팅이란다. 처음 들어보는 업체였는데, 대기 확인하는 페이지를 잘 살펴보니 야놀자에서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시스템들처럼 기본적으로 카톡과 연계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1시간 동안 근처 카페에서 놀면서 틈틈이 "실시간 웨이팅 확인하기"를 해대다가 세 팀 남았다기에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2022.09.12 - [雜談 주절/移動 모발 (mobile)] - CAFE Halo 카페 헤일로
입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가게 현판. 글씨체가 네모네모난 게 "고기리"와도 "막국수"와도 잘 어울린다. 벽면에는 모범음식점 마크가 딱 박혀있고, 그 아래 흑판에는 시판 중인 오뚜기 고기리 들기름막국수와 계절메뉴인 열무김치막국수를 각 홍보하고 있었다.
모범음식점이 붙어있던 벽 안 쪽에는 2015년부터 받은 블루리본과 맛잘알 허영만 만화가의 사인도 떡 하니 붙어있었다. 식당 사장님이 홈페이지도 열심히 운영하시는 것 같았는데, 책 써서 기부도 하신 모양.
본격적인 식당 내부 입성에 앞서 뭔가 상품들이 빼곡하게 눈에 들어온다. 흑판에서 광고 중이던 오뚜기와 콜라보했다는 들기름 막국수도 있고, 왜 여기서 파는진 잘 모르겠는 전통 과자들도 있었다.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가면서 심심풀이로 먹으라는 의도려나? 신기하게도 식사를 마치고 한아름 사가는 손님도 종종 눈에 띄더라.
고기리막국수의 메뉴 구성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막국수와 수육인데, 계절 메뉴로 물김치로 만든 막국수를 파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맑은 열무김치 막국수를 팔고 있었고, 겨울에는 동치미 막국수를 파는 듯.
테이블 번호를 테이블에 붙여두지 않고 이렇게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 두고, 안내 사항도 약간 기재해 뒀다. 고기리막국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가막국수"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막국수를 인원수대로 주문하면 주문이 가능한데, 본품의 반값임에도 양은 같아서 안 시키면 손해인 기분. 무료인 아기막국수는 36개월 미만인 경우 주문 가능하고, 술은 동동주 인당 1잔, 막걸리 2인당 1병만 주문 가능하다.
직원 분이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 주시고, 기본 세팅도 능숙하게 샤샤샥 해주셨다. 주전자에 있는 건 뜨끈한 면수. 많이 쿰쿰하지 않고 구수해서 좋았다. 메뉴는 국수보다는 고기가 먼저 나왔다.
아삭아삭 담담한 김치와 마늘, 고추, 쌈장이 기본찬. 수육을 시켜서 새우젓도 나왔다.
수육 소 14,000원 국내산 돼지고기
그냥 국수만 먹기엔 아쉬워서 큰 기대없이 시켰는데, 나무랄 데 없이 잘 삶은 수육이었다. 국내산이라 더 맛있나?
계절별미 맑은 열무김치 막국수 10,000원
물막국수와 경합을 벌였지만 "계절별미"라는데 안 먹어볼 수가 있나. 고기리막국수의 메밀면은 비교적 얇고 거칠지 않은 편.
원조 들기름막국수 9,000원
이거 먹으러 산 넘고 물 건너는 것도 모자라 1시간 기다려 여기까지 왔다. 며칠 전에 가봤던 개수리막국수에 비해서 면이 부드럽고, 김가루도 굉장히 곱게 올라간다. 덕분에 일체감 있게 먹기 좋았고, 흑임자로 만든 무언가를 먹는 것처럼 굉장히 고소했다. 특히 쓴맛이 전혀 없어서, '역시 원조는 다른 건가?' 싶었다.
2022.09.14 - [雜談 주절/移動 모발 (mobile)] - 개수리막국수
들기름막국수를 먹는 방법은 섞지 않고 먹다가 3분의 1 쯤 남았을 때 육수를 부어 먹으라고 하셨다. 4분의 1이었나?
어쨌든 적당히 남겨서 시키는 대로 함께 주신 육수를 부었다. 아마도 물막국수와 같은 육수일 것 같은데, 이것도 나름 별미. 겉도는 거 없이 잘 어울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추가 막국수(비빔) 4,500원
추가 막국수는 물과 비빔, 둘 중에 선택해야 한다. 이미 열무김치막국수도 먹었고, 물막국수 육수도 맛을 봐 버려서 추가는 비빔으로 정했다.
면이 산봉우리처럼 쌓인 비빔막국수. 소문대로 "추가" 개념의 양은 아닌 느낌 ㅋㅋ 양념장이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올린 것처럼 올라간 모습이 귀여웠다. 면에 참기름을 뿌려둔 듯했고, 많이 맵지 않고 달달한 비빔막국수였다.
가급적 메뉴 정복을 위해 동동주도 시켜봤다. 들어오는 길에 보이던 냉장고를 살짝 보니 막걸리는 평소 자주 보던 것 같아서 패스.
동동주 1잔 1,000원 포천명가 찹쌀생동동주
와인처럼 동동주를 병째로 가져오셔서 넘칠 것처럼 인심 좋게 따라주셨다. 실제로 들다가 흘림 ㅋㅋ 달콤하고 깔끔해서 술술 들어가는 동동주였다. 그래서 2리터 가까운 병에 담아 파는 건가? ㅎㅎ
뚜벅이에겐 난이도가 높은 접근성이었지만, 왜 인기가 많은지 납득이 가는 식당이었다. 손님들 연령대가 다양하고 가족단위로 오는 분들도 많았는데, 하필 소리 지르는 아기가 연이어 주변에 자리를 잡아서 식사하는 동안 불편한 부분이 있긴 했다. 그거 빼고는 만족. 환상의 맛까진 아니더라도 괜찮은 맛이었고, 설명만 들었을 땐 '그게 뭐야?' 싶었던 메뉴를 완성도 있는 그릇으로 먹어봐서 '이래서 먹는구나' 알게 됐고, 평소 주로 들르는 곳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재밌는 동네에도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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