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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그리아 - 스테이크 목살 + 두껍이 + 칼집삼겹 + 술리또 + 맥주

食食 얌냠

by 눈뜨 2023. 5. 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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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두께가 있는 생고기를 특별한 양념 없이 구워 먹는 걸 좋아하는데, 돌이켜보니 최근엔 양념한 고기나 냉삼 같은 걸 주로 먹었단 사실을 깨닫게 됐다. 목살이나 삼겹살 구워 먹는 걸 좋아해서 유명하단 맛집을 잔뜩 찾아다녀왔지만, 막상 먹어보면 '맛있긴 한데, 평범하지 않나?' 싶은 감상이라 웨이팅까지 해가며 먹을 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차라리 손이 더 많이 가는 메뉴들을 찾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 좋아하는 덴 이유가 있는 거니까, 모처럼 그냥 구운 고기를 먹어보기로 했다.

두툼한 목살을 숯불에 맛있게 구워준다는 돈그리아. 선릉역에서 멀지 않은 골목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두툼"도, "숯불"도, "구워주는 것"도 너무 소중한데, 이걸 다 하다니... 특히 "구워주는" 건 회사 앞에서 필요한 덕목인데, 그래서 사무실이 많은 동네에 있는 걸지도 ㅎㅎ

생활동선에서 벗어난 지역이라 좌표를 찍고 찾아갔는데, 지도 앱이 시키는 대로 가다 보면 '여기 있다고?' 싶은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가게 마빡에 딱 간판이 붙어있지 않아서 '여기가 진짜 맞나?' 싶었지만, 찬찬히 뜯어보니 출입문이나 기둥에 걸린 액자 등 곳곳에서 가게 이름이 눈에 띄어 여기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오후 12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기에 맞춰서 찾아 간 길이었는데, 각오가 무색하게 손님이 1도 없었다. 사무실이 많은 동네의 비 오는 토요일 점심 고깃집인 탓이려나? 웨이팅을 걱정했던 게 머쓱할 지경.

출입문에 "웨이팅이 있는 경우 식사 시간 2시간 제한"이라든가, "일행이 모두 와야 입장이 가능하다"든가, "대기 명부를 작성하라"는 등의 안내문이 입구에 써붙여져 있는 걸 보면 원래는 대기가 제법 있는 모양이다. 예상대로 인근 직장인들 맛집이려나?

아마도 우리가 개시 손님이었던 것 같고, 식사 내내 손님이 많이 들진 않았다. 고깃집은 저녁 장사가 찐이긴 하지. 참고로 돈그리아는 평일엔 오후 2시부터 11시까지, 토요일이랑 공휴일엔 12시부터 10시까지 영업하고, 일요일에 쉰단다.

이용시간은 2시간, 첫 주문은 인원수 이상, 추가주문은 2인분 이상, 식사 시 대화는 조용히 등 메뉴판에도 주의사항이 빼곡하다. 시커먼 바탕에 뻘건 색으로 또박또박 박아놔서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지만, 손님이 적고 한가할 땐 예외가 전혀 없진 않은 것 같다. 처음 고기 3인분을 시켜 먹고, 어쩐지 아쉬워서 1인분 추가가 가능한지 여쭤보니 된다고 하셔서 결국 둘이서 고기만 4인분을 먹었다.

(키키키킥)

맥주 5,000원
맥주는 테라와 켈리 두 가지가 있다셔서 신제품인 켈리를 주문해 봤다. 켈리는 하이트 진로에서 새로 내놓은 올 몰트 비어로 맥쓰를 대체할 제품이라나, 뭐라나? 늬끠하고 기름진 음식들과는 차라리 가볍고 달큰한 테라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소맥용으로도 애매한 포지션일 것 같은데, 이것만 먹기에 존재감 뿜뿜도 아니라... 타겟층이 모호하지 않나 싶다.

기본 상차림 사진을 따로 안 찍어서 이걸로 대체. 기본 반찬은 깻잎지, 대파김치, 볶은 김치, 양파절임, 총 네 가지였다. 신김치를 싫어하는데 볶아서 나온 덕에 잘 집어먹을 수 있었다. 석쇠라 구울 수 없어서 구워주신 걸지도 ㅋㅋ

(아님 말고)

돼지고기 : 스테이크 목살 2인분 150g x2=300g, 16,000원 x2=32,000원 + 두껍이 1인분 150g 16,000원
돈그리아의 대표메뉴인 스테이크 목살은 짝수 단위로만 주문이 가능하다. 큼직하고 두껍게 나와야 하니까 1인분이 안 되는 건 알겠는데, 꼭 짝수 단위여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2인분을 기준으로 한 덩어리씩 미리 잘라두고 쓰는 거려나? 오른쪽에 조각조각 잘라진 게 두껍이인데, 부위는 영업비밀이란다. 돼지군의 추측으로는 두껍데기살이라는 부속고기가 아닌가 싶다고. 부위는 삼겹살과 뒷다리 사이쯤이고, 뒷껍살이나 쫄깃살, 쫀득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듯.

사장님 포스의 직원 분(진실은 알 길이 없지만 이하 "사장님"으로 칭하기로)께서 목살부터 굽기 시작하셨다. 살코기 부분은 큼직큼직 덩어리로 자르셨고, 기름이 있는 부분은 다소 얇은 두께로 각 두 조각씩 먹을 수 있게 네 등분해 주셨다.

열심히 뒤적뒤적.
고기가 다 익을 즈음 숟가락을 앞접시에 올리라고 하시더니, 각 숟가락에 살코기 한 점씩을 올려 주시고 첫 점은 그냥 먹어보라 하셨다. 소금이 처음부터 뿌려져서 나와서 굳이 소금을 더 찍을 필요는 없었다. 석쇠 위에서 열심히 딩굴딩굴 익히시더니, 진짜 숯불향이 쏘옥 잘 밴 촉촉하고 고소한 고기였다. "맛있다" 반박불가.

사이드 : 청어알 소스 (트러플오일) 3,000원
메뉴판에서 유일하게 "강추"라고 적혀 있던 청어알 소스. 잘 섞어야 맛있다며 열심히 섞어주라고 하셨다. 매콤한 청어알젓에 깨랑 트러플오일을 곁들인 것 같은데, 이 조합 찬성! 청어알젓이 트러플오일과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일인가?! 이 소스 맛있다는 후기가 넘쳐나는 걸 보면서도 내심 시큰둥했었는데, 직접 먹어보니 나도 맛있어무새행ㅋ 

두 번째로 올려주신 고기의 추천 소스는 와사비를 곁들인 청어알 소스였다. 알려주신 대로 먹으려고 청어알소스를 쌈장 찍어먹듯 젓가락으로 집어오고 있으려니 사장님께서 "짜지 않아서 많이 올려도 된다"며, "많이 올릴수록 맛있다"셨는데... 역시 전문가 말은 옳다. 트러플 오일 특유의 매캐한 향이 알싸한 와사비와도, 매큼하면서 톡톡 터지는 청어알과도 잘 어울렸다. 기름이 있어선지 기름진 고기와도 잘 어울렸는데, 매큼하고 알싸하면서 매캐한 뾰족한 특성 덕에 물린다거나 느끼하지도 않았다. 강한 향신료는 고기를 쉽게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나의 사랑 후추처럼 ♡

목살이 다 익고 난 뒤엔 두껍이를 구워 주셨다.

두껍이는 비교적 기름기가 많고, 껍데기도 붙어 있었는데, 생긴 것처럼 오독오독 질깃하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식사 : 술리또 (계란 + 버터 + 바질) 10,000원
돈그리아만의 특이한 된장술밥인 술리또. 첫인상은 여느 고깃집에서나 쉽게 만나는 된장술밥이다. 일단 반쯤은 평범하게 떠먹으면 된다. 구운 돼지고기와 된장에 말아놓은 밥은, 그 무섭다는 아는 맛!

남은 된장술밥에 처음 함께 나온 날계란과 버터 포션 하나가 들어가면서 술리또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된장술밥이 반쯤 남아있는 냄비를 석쇠에 올린 다음 버터와 계란을 넣고. 화로 위에서 휘휘 잘 섞어 준다.

원래는 직접 쉐킷쉐킷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첫 손님 특권으로 사장님의 현란한 손놀림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남은 두부도 잘 으깨가면서 냄비 안의 재료들을 골고루 잘 섞은 게 이런 모습. 바질을 넣기에 앞서 한 숟갈씩 맛을 보라 하셨다. 이미 방금 전까지 퍼먹던 된장술밥과는 완전 다른 음식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질페스토를 한 국자 넣고 다시 골고루 섞어주면 술리또가 완성된다.

바질페스토는 강하다. 된장은 숨긴 맛이 되었는데, 제법 꼭꼭 숨어있다. 이거 재밌네.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청어알 소스를 얹어 먹는 것. 걘 어쩜 여기까지 잘 어울려버린다. 괜히 강추가 아녀.

돼지고기 : 칼집삼겹 150g 17,000원
이대로 끝내긴 아쉬워서 주문한 삼겹살. 원래 추가주문은 2인분 이상이라고 쓰여있어서 2인분부터 가능하다고 하면 그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된다고 하시니 어쩔 도리가 있나? 먹어야지 ㅋ 확실히 비계가 많은 부위라 상대적으로 양이 적어 보였다.

이번엔 다른 직원 분이 오셔서 구워주셨다.

칼집을 잔뜩 내서 익어가는 모양이 돼지고기가 아니라 중국집에서 흔히 보는 오징어 같았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라 더 바싹 익혀주셨다.

추천 먹팁은 대파김치에 와사비. 칼집도 잔뜩 내고 더 오래 구운 덕에 가장 숯향이 진하게 뱄다. 그런데 삼겹살보다 처음에 목살에서 비계 붙은 부위 잘라서 익혀주신 게 더 맛있었다. 왜지? 어린 시절엔 무조건 삼겹살이 제일 맛있었던 것 같은데, 좀 자라고 고기를 많이 먹어본 뒤엔 목살이 더 맛있는 경우가 많다. 입맛이 변한 걸까, 고기가 변한 걸까? 둘 다려나?

돈그리아에서 먹은 중 가장 맛있었던 조합은 역시 도톰하고 촉촉하게 구워낸 큼직한 고기 위에 청어알 소스 한 숟가락이랑 와사비 한 꼬집. 술리또도 재밌긴 했지만, 된장술밥이 더 맛있었다. 다음엔 일단 목살 2인분 기본으로 하고, 이번에 안 먹은 고기를 추가로 먹어봐야겠다. 밥은 그냥 공깃밥을 시켜서 같이 먹어보는 것도 좋을 듯. 물론 청어알 소스는 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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