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식에 있어서 양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고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어릴 적 대표적인 외식메뉴였던 덕인지 단짠 양념의 돼지갈비가 간간이 떠오르고는 한다. 어느 날 인계동에 제법 오래된 돼지갈빗집 본점이 있단 정보를 입수해서 한번 찾아봤다.
인계동이라고 하지만 흔히 "인계동" 하면 떠오르는 번화가에선 제법 떨어져 있다. 아파트랑 사무실들이 밀집한 어딘가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식당이었지만, 동네 맛집으로 유명한 모양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숯불갈비를 찾아 온 손님들로 입구가 북적이고 있었다.
마포본가는 숯불갈비 전문점이지만 갈비와 목살을 섞어 써서 메뉴 이름은 "돼지갈비"가 아니라 "돼지양념구이"로 표기한 부분이 재밌었다. 갈비를 비롯한 특수부위보다는 고기다운 맛과 식감의 목살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좋아~
카운터에 놓여있는 대기 명단에 이름을 쓰고 식당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다가 우리 앞에 한 팀 정도 남았을 즈음 신발을 벗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이나 밖이나 딱히 대기할 공간은 없어서 신발장을 등지고 카운터를 마주 보고 어정쩡하게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오랜 터줏대감 답게 누군가의 사인들이 한가득 붙어 있었다. 근처에 KBS 드라마센터가 있는 덕을 봤을지도 ㅎㅎ
기다림 끝에 안내받은 자리는 카운터 바로 근처에 에어컨을 마주하는 자리였다. 기둥 옆에 딱 붙은 우리 테이블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애매하게 놓여있었다. 그렇지만 기다릴 때 워낙 더웠던 터라 에어컨이 이렇게 가까우니 더울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고기를 구워 먹는 식당에서 더우면 이게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먹다 지쳐버려서 맛이 어떻든 간에 '여름엔 오지 말자' 다짐하게 된다. 하지만 쾌적한 식사를 방해하는 건 더위만이 아니었다. 출입문을 활짝 열어둔 탓인지, 에어컨 때문인진 확실치 않지만, 바람이 안쪽으로 자꾸 불어와서 연기가 자꾸만 덮쳐왔고,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매웠다.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하고 식사를 이어갔고, 고기를 더 시키지 않고 부랴부랴 정리하고 식당을 나섰다.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고기는 괜찮다" 싶었던 걸 보면, 어쨌든 맛집인 걸로.
언젠가 광교 호수공원 근처에 있는 갈비꽃이란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여기 마포본가에서 낸 체인점이란다. 전혀 몰랐네. 갈비꽃은 훨씬 최근에 생긴 식당이라 깨끗하고, 평일 저녁엔 웨이팅도 없었고, 시설도 새 거라 그런지 연기도 잘 빠지고, 가게도 시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는 여러모로 마포본가 보다는 갈비꽃이 나았다.
돼지양념구이 280g 16,000원 (갈비 : 미국산, 목살 : 스페인산)
직원 분이 처음 왔냐고 물어보시곤, 굽는 법을 알려주시며 "마포본가의 고기는 두껍다"고 하셨는데, 당시엔 '이게 그렇게 두껍나?' 싶었는데, 얼마 뒤 다른 돼지갈빗집을 가보니 확실히 여기 고기가 두꺼운 편이더라.
마포본가에서 배운 돼지양념구이 조리법은, 고기 덩어리를 석쇠에 올린 다음 석쇠 결을 따라서 듬성듬성 조각을 낸 뒤에 굴리듯 익히는 것. 이 방법은 이후로도 양념된 고기를 구워 먹는 식당에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양념을 한 고기는 양념 때문에 금방 타서 굽는 사람이 먹는 내내 굉장히 고생스러운데, 이러면 훨씬 간편하게 구워서 함께 맛나게 먹을 수 있을 성싶었다.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선 첫째로 고기가 두툼해야 하고, 어느 정도 화력이 받쳐줘야 하며, 배기가 잘 되어야 할 것 같다.
돌돌 잘 굴려 구우면 윤기가 도는 먹음직스러운 모양새가 되는데, 그러면 옆으로 빼뒀다가 취향대로 더 익혀 먹든 하면 된다. 양념갈비가 맛없긴 힘들어도 특별히 맛있기 쉽지 않고, 양념 고기를 간편하고 맛있게 굽는 것 역시 어려운데, 전문가로부터 제대로 배운 덕에 촉촉하니 인상적으로 괜찮은 돼지갈비 숯불구이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공기밥 1,000원, 된장찌개 2,000원
양념 고기를 먹는데 밥이 빠지면 아쉬우니 밥 추가. 고기랑 밥이 있는데 된찌가 빠지면 허전하니까 된장찌개도 추가.
물냉면 6,000원
살얼음 동동 띄운, 얇은 면발의 깔끔하고 시원한 물냉면. 갈빗집과 딱 어울리는 물냉면이었다.
연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고기는 맛있었고, 무엇보다 양념갈비를 굽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 알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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