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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최애(카페)음료

雜談 주절/移動 모발 (mobile)

by 눈뜨 2022. 2. 2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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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라는 공간에 처음 발을 디딘 과거의 나에게, 오늘만 해도 몇 잔이나 마신 아메리카노나 드립 커피를 들이민다면, 미간을 잔뜩 지푸릴 게 분명하다. 상당한 기간 동안 당이 첨가되지 않은 커피는 내게 "탄 콩 우린 물"에 불과했으며, '이 시커멓고 쓴 걸 대체 왜 먹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음료'였다. 그래서 처음 내가 카페에서 선호했던 음료는 바닐라 셰이크였다. 카페 메뉴판에 있는 다양한 의미불명의 외국어들 사이에서 그나마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메뉴였으며, 직관적으로 "맛있다!"는 평이 나오는 음료였다.

해서 당시 스타벅스 최애는 바닐라크림 프라푸치노였고, 커피빈의 최애는 퓨어 바닐라 아이스 블렌디드였다. 이름은 달라도 그 본질은 바닐라 셰이크인 이 메뉴들은 나의 씀씀이 대비 고가 품목임에도 금세 사라져 버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 음료를 천천히 마신다는 일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먹을 걸 파는 곳에서 음식을 다 먹었으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의 소유자였던 터라 가성비가 실로 극악스러웠다. 달콤한 와중에 시원한데 바닐라향까지 나니, 나로서는 통 아이스크림처럼 녹기 전에 쭉쭉 해치워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면 수 분 내에 사라지는 게 당연지사. 그러면 업장 최고가 수준의 음료를 시키고도 자리에서 30분을 보내기가 힘겨웠다. 누군가 카페는 초단기 공간 임대사업이라 했는데, 그 취지에 완전히 반하는 행태였던 것.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차츰 카페는 음료를 뿌시러만 가는 곳은 아니란 인식이 생겼고, 이런저런 계기로 점차 다른 음료도 시도해 보다가, 결국엔 평균보다 커피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지금에 이르렀다.

커피 메뉴 중 처음으로 맛있다고 생각했던 건 카푸치노였다. 바닐라를 좋아하니까 당연히 바닐라라떼를 좋아하긴 했지만, 커피로서 좋아한 건 카푸치노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새카만 커피의 맛을 구분하고 지금처럼 즐기게 된 건 훨씬 더 이후의 일. 카푸치노는 일단 생긴 것부터 귀여운 구석이 있다. 봉긋하고 폭신한 모습으로 올라온 거품에 시나몬 가루 톡톡 올린 모양새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괜히 따수워지는 기분이 든다. 진하고 씁쓸한 에스프레소의 맛이 부드러운 우유에 묻히면서도 고소하고 포근한 우유 거품과 시나몬의 조화가 좋다. 요즘은 상향평준화된 경향이 있지만, 그 시절엔 게거품 같이 애매한 폼을 얹은 카푸치노가 훨씬 많았는데, 다행히 생활 반경 안에 수준급의 카푸치노를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 수준에서도 과하지 않은 가격에 제공하는 카페가 있었던 덕분에 더 자주 먹고, 더 좋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카푸치노는 여전히 비나 눈이 오거나 쌀쌀한 날이면 문득 찾게 된다.
카푸치노가 맛있던 뮤제드오르세, 직접 머신도 만져보고 드립도 해볼 수 있게 해 주신 사장님 덕에 커피 생활 반경을 확장시켜준 카페 모이, 커피는 아니지만 홍차를 처음 알게 해 줬던 느린 달팽이의 사랑, 그때 그 시절 자주 가던 카페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추억의 공간이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켜준다는 건 참 뿌듯해지는 일이다. 노포를 사랑하는 어르신들의 심정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금은 그곳들이 거기에 없다는 사실은 퍽 아쉽지만, 그 시절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누린 소소한 행운들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상, 하드 털어 나온 옛날 최애(카페)음료 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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