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매서운 바람이, 오늘은 잠깐이었지만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이런 날이면 생각나는 메뉴가 샤브샤브. 삶는 조리법을 선호하지 않음에도, 종종 샤브샤브란 메뉴가 땡기고는 한다.
삼성동에 위치한 하나샤부정. 코엑스몰 근처긴 하지만, 로컬이 아닌 입장에선 다소 생뚱맞은 곳에 있다.
사무실이 많은 동네라 그리 이상할 건 없다지만, '진짜 이런 데 맛집이 있다고?' 싶은 위치였다.
식당 외양에서 뭔가 전문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진 않는다. 오래되어 보이긴 해서, 모 아니면 도의 기운이 스멀스멀.
최근에 갔을 땐 QR 체크인 후 입장하더라. 식당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일본에 있는 오래된 현지 식당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아늑한 듯, 산만한 그런 특유의 느낌이 있다.
음식은 샤브샤브만 파니까 돼지고기나 소고기 중에 고르면 된다. 해서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본 적이 없는데, 검색해보니 메뉴판 자체가 존재하긴 하는 모양이다.
하나 돈샤브세트 16,000원.
개운한 육수에 돼지고기 목심과 버섯류, 채소를 넣어 고객이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있다(우동 서비스).
샤브샤브라고 하면 소고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하나샤부정은 돼지고기 샤브샤브로 유명하다. 하나샤부정을 처음 찾았던 것도 돼지고기 샤브샤브가 유명한 샤브샤브 집이 있다 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만 다들 돼지고기를 주문하고, 실제로 돼지고기가 낫다.
기본 차림은 싱그러운 양배추 샐러드와 간장 양파, 그리고 고소한 참깨소스와 간장베이스의 소스가 깔리고, 주문하면 고기와 채소가 나온다. 샤브샤브란 고기를 먹는 방법에 불과하므로 고기만 추가하는 게 있으면 좋으련만, 하나샤부정에서 고기를 추가하면 세트가 그대로 다시 등장한다. 덕분에 한번 다녀오면 한 달치 채소를 섭취한 기분 ;;
하나샤부정을 알게 되고 총 네 번의 방문을 했고, 항상 돼지 2인분으로 시작했다. 사진을 모아보니 두 번째 방문 때 고기가 유독 달라 보인다. 그 날은 손님이 많아서 신발 벗고 들어가는 방 자리에 앉았었고, 고기는 다른 날에 비해 기름기가 적고 다소 녹아 있는 상태였다. 그날은 소주를 곁들였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고기를 주문해봤고, 가장 많은 액수를 결제하고 나왔다.
처음 갔을 때도 비싸다 싶었는데, 지금은 더 비싸져서 1인분에 16,000원 상태. 그냥 1인분 가격이라 생각하면 비싼 것 같지 않지만, 못해도 1인분은 추가를 해줘야 둘 다 고기를 섭섭지 않게 먹을 수 있으니 실제론 인당 24,000원인 셈. 나만 그런가 ㅋ
가격이 오르면서 고기 질이 더 좋아진 건지, 보다 기름지고 빛깔 좋은 모습이었다. 샤브샤브로 먹는 소고기의 경우 담백한 부위를 쓰는 탓인지 직관적으로 맛있다기보다는 '그냥 고기'라는 느낌으로 먹게 되는데, 돼지고기라 보다 고소하고 착착 붙는달까?
사진으로 모아보는 고기 변천사. 두 번째 고기를 보니, 확실히 샤브샤브는 비싸구나 싶다. 저러니 1인분으론 만족할 수가 없지.
푸짐한 채소들. 버섯이 세 가지던가? 배추랑 청경채, 비타민, 곤약, 구운 두부랑 유부 등이 소쿠리에 소복하게 담겨 나온다. 곤약이랑 두부는 주문한 수에 딱 맞춰 넣어주신다. 채소는 더 주기도 하시는 듯. 좀 빠른 속도로 비워내면 더 줄까 물어보곤 하시더라.
추가로 더 주문하지 않았다면 상 위의 고기와 채소 소쿠리를 비운 뒤 우동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샤브샤브를 단계를 마친 뒤에 찾아오는 냄비우동 타임.
처음 갔을 때 나왔던 우동 모습. 쑥갓이랑 버섯, 배추, 유부, 어묵 등이 들었었는데, 두 번째 갔을 때부턴 구성이 좀 바뀌었다.
쑥갓 대신 청경채가 살짝 올라갔다. 보기엔 밋밋해서 못생겨진 감이 없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쑥갓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 편이 취향에 맞다.
한 소끔 바르르 끓인 뒤에 덜어서 먹으면 된다.
우동 양이 많진 않다. 이미 본식을 마치고 서비스로 따라오는 개념이라 그러려나? 처음 갔을 땐 추가 주문을 하지 않아서 우동 양이 적다 싶었는데, 이제 1,5인분을 해치운 뒤라 딱 적당하다.
시치미를 곁들이면 바로 라면 뉘앙스라 이건 마지막에!
여기서부터는 추가 메뉴.
소주 5,000원
몇년 전까지만 해도 소주값을 2천 원 대로 받는 집도 있었는데, 요즘은 4천 원이 기본이고, 5천 원 받는 집들도 제법 많아졌다. 내가 저축을 할 수 있었던 건,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다.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먹는다면 맥주보다는 소주, 처음처럼 보다는 참이슬이 낫다 생각하는데, 진로 이즈백은 못 먹겠다. 소주는 원래 맛이 없어서 그냥 짠 하는 재미로 먹는 편인데, 이즈백은 느끼하고 밍밍해서 몇 차례 도전 끝에 "못 마실 것"으로 분류된 상태다. '병만 예쁘다' 싶었는데, 요즘은 참이슬 라벨에 두꺼비가 철 따라 착장을 바꿔가며 귀염을 떠는 통에 겉보기 등급마저 밀리는 중.
역시 소주는 꼴꼴꼴~ 짠 하는 맛에 먹지 않나 싶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하나샤부정엔 고기 추가가 따로 없다. 해서 "고기 하나 더 주세요." 하면 처음 먹었던 거랑 같은 모양새의 접시와 소쿠리가 등장한다.
하나우 샤브세트 16,000원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우린 육수가 깔끔한 맛을 낸다. 얇게 썬 소고기 등심, 각종 버섯, 채소를 고객이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다(우동 서비스).
기왕 앉아서 소주도 시켜본 거 소도 먹어보자 하고 시켰는데, 다들 돼지를 먹는 덴 이유가 있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특색이 없달까? 혓바닥이 "돼지가 낫다!"를 외쳤다. 하나샤부정은 소고기 샤브샤브와 돼지고기 샤브샤브의 가격이 동일하다. 돼지고기가 소고기와 값이 같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원재료 값이야 알 도리가 없지만, 맛만 놓고 따졌을 때 이의가 없다. 이 정도면 단일 메뉴로 가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게 돼지고기 1인분 추가. 저 멀리 곤약 하나, 두부 하나, 새송이 한 조각을 오차 없이 올린 채소 소쿠리가 인상적이다.
최근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 ㅎㅎ
기나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시원한 매실차로 입가심.
가격도 있는 편이고, 접근성도 좋은 편은 아니라 자주 가진 못하지만, 이따금씩 생각나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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