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골목 안쪽 어딘가. 딱히 랜드마크랄 게 없었지만 어느샌가 디올성수가 거대하게 들어앉았다. 정오가 채 못된 시각이었지만 사람들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오른쪽이 아닌 왼쪽.
이번 방문의 목적지는 문츠바베큐. 가볼까 싶다가도 비싸서 저어했었는데, 전 날 둘이서 점심값으로 30만원 가까이를 쓰고 나니 한번 가볼 용기가 생겼다. 빨간 소 마크를 보고 있으려니, 운전 1도 안 하는 뚜벅이지만, 왠지 엔진오일이 떠오른다. ㅋ
문츠바베큐는 디올성수 바로 맞은편.
1층은 식당은 아니었고, 전시랑 음식이 나오기 전 처리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듯 보였다.
요즘 문츠바베큐는 아드벡과 콜라보 행사 중. 피트 향이 강하고 스모키 한 싱글 몰트 위스키인 아드벡은 스코틀랜드의 아일라섬에 위치한 작은 증류소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피트 향 극혐인 내가 피해야 하는 게 아일라섬의 위스키구나.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캐치테이블에서 12시로 예약을 하고 방문했은데, 12시 전에는 이렇게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막혀있었다. 오픈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직원이 내려와서 이 안내문을 치우면서 입장 안내를 도와주더라.
캐치테이블에서 문츠바베큐 예약하기 ☞ https://app.catchtable.co.kr/ct/shop/moonts?from=share+https%3A%2F%2Fapp.catchtable.co.kr
예약이 수월해서 꽤나 여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모두 입장하니 바로 만석이었다. 다들 예약하고 오는 모양. 음식이 빨리 나오는 편이라 그런지 테이블 회전은 의외로 빨랐다.
2층에 올라와 바로 오른편에 있는 아드벡 포토월(?). 배도 고프고, 손님도 한가득이라 이 앞에서 사진을 찍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중에 식사하다 보니 포토월 옆에서 위스키 서비스를 준비 하더라.
벽면은 아마도 이번 콜라보 행사를 하면서 넣은 듯한 일러스트가 장식하고 있었다. 연기를 피해서 고기랑 토마토랑 -사진엔 잘렸지만- 가지가 줄줄이 줄행랑을 치는 모양. 그렇게 해서 가는 곳이 그릴 위인 것 같던데... 의미가 뭐지? (O-o)a
우리는 가게에 단 하나뿐인 "덩그러니 디올성수 뷰 원탁 테이블"에 앉았다. 디올 자체엔 딱히 관심은 없다만 이질적인 창 밖 풍경은 퍽 재미있었다.
보통이라면 이것저것 여러 가지가 한 번에 나오는 게 좋으니 텍사스 플래터나 포크 플래터 중에 고민해서 시켰겠지만, 또 "한정수량"을 놓치면 아쉽지. 첫 방문엔 기본메뉴를 먹는 편이지만, 오래도록 미루다 걸음했으니 식당에서 야심차게 내놓는 걸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한정수량으로 판매하는 메뉴는 비프립 플래터와 스페어립 플래터였는데, 둘 중 비프립을 먹어보기로 했다. 원래 메뉴판 제일 위에 있는 게 가장 주력 메뉴기도 하고, 미리 사진을 살짝 찾아본 결과 압승. 사진이 걍 맛있어. (✦‿✦)
아드벡 세트. 모든 플래터 메뉴에 25,000원 추가. 아드벡 인퓨즈드 소스, 아드벡 위비스티 1잔, 아드벡 비자르비큐 1잔
입구에서부터 끈덕지게 들이대고 있는 아드벡을 빼놓을 수 없으니 세트로 추가했다. 위에 쓴 설명처럼 모든 플래터 메뉴에 추가 가능하다. 찾아보니 아드벡(Ardbeg)은 LVMH 그룹의 싱글 몰트 스카치위스키 브랜드란다. 둘 중 위비스티가 기본 버전이고, 비자르비큐는 BBQ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한정판인데 기본 버전에 비해 빛깔이나 향과 맛이 모두 짙더라. 아드벡 위비스티 한 잔이 13,000원이고, 아드벡 비자르비큐 한 잔이 15,000원이니까, 굳이 소스가 필요 없더라도 두 가지 위스키를 모두 마시고 싶다면 세트를 주문하는 게 이득이다. 세트에 2천 원을 추가하면 위스키를 하이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스모키 하거나 피트 한 느낌의 위스키는 내 취향이 아니라 굳이 이걸 하이볼로 먹고 싶진 않아서 난 다른 음료를 마시기로 했다. 참고로 아드벡 인퓨즈드 소스는 위스키를 넣어 만들었다고만 설명했는데, 플래터에 나온 기본 바베큐소스와 비교했을 때 시고 단 맛이 덜하고, 재료들을 좀 더 이것저것 넣어서 고기와 보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좋더라.
DRINK - WINE Glass - House Wine 하우스 와인 10,000원
향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고기와 잘 어울리는 적당한 레드 와인. 뒷맛에 남는 바닐라 뉘앙스가 마음에 들었다.
Signature - 비프립 플래터 (한정 수량) 88,000원. 6시간 훈연한 꽃갈비살(380g), 꽈리고추, 마늘, 적양파, 코울슬로, 수제피클, 미니번 4개
왼쪽 그릇이랑 가운데 접시에 든 게 비프립 플래터고, 오른쪽 유리컵이랑 종지에 든 게 아드벡 세트 구성품. 피클이랑 야채가 든 그릇은 있거나 말거나고, 빵을 곁들이는 게 괜찮긴 했지만, 나 같은 사람이라면 메인 접시만 나와도 충분할 것 같다.
거대한 뼈다귀를 중심으로 한 쪽엔 적양파와 머스터드, 구운 통마늘과 꽈리고추, 레몬이 올라가 있고, 반대편으로 도톰한 소고기가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있다. 마늘과 고기의 조합은 항상 옳지. 잘 구워진 마늘을 가져와 살짝 으깨서 고기에 곁들이면 고기가 한층 더 맛있어진다. 꽈리고추는 매콤한 것과 엄청 매운 게 섞여 있었다. 처음 집은 게 굉장히 매웠는데, 청양고추를 구운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ㅅ@))
이제껏 바베큐라고 해서 먹어보면 소스맛이 강하거나 수분이 다 날아가서 뻣뻣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문츠바베큐의 비프립은 굉장히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터프한 외양과 달리 잡내도 없고 마일드했다. 훈연 향도 나지 않는 게 의외긴 했지만, 맛있고 편하게 먹는 두툼 소고기였다.
빵도 부드러워 잘 어울렸다. 따땃하게 딱 먹기 좋은 온도로 데워 나와 좋았다. 어린 시절 마트나 체인점 빵집에서 사다 먹는 모닝빵은 퍽퍽해서 잘 먹지 않았었는데, 모양은 비슷해도 맛은 다를 수 있단 게 새삼 재밌다.
비프립 플래터가 큰 메뉴긴 하지만 하나만 시키면 아쉬우니 추가 주문을 해야 했고, 탄수화물이 부족하니 맥앤치즈를 추가했다.
Side - 베이컨 맥앤치즈 15,000원. 베이컨, 할라피노, 마카로니
개인적으로 꾸덕한 느낌의 맥앤치즈를 좋아해서 내 취향에 비해선 좀 묽은 감이 있었지만, 매운 꽈리고추를 진화하며 요긴하게 잘 먹었다.
모름지기 고기는 질 좋은 생고기를 불에 잘 구워 소금이랑 후추 정도 더하는 게 최고라는 주의라 양념이라든가 훈제라든가 하는 처리를 하는 걸 달가워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먹고 나니 다른 집 바베큐는 어떨지 살짝 궁금해졌다. 그냥 아주 살짝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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