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어딘가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양식집, 누메로도스.
성수역보다는 뚝섬역에서 가깝다.
웨이팅이 있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게 앞으로 갔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휑한 모습. 대문(은 없지만 대문이 있었을 자리) 앞에서 힐끔 보고 근처 와인샵으로 발길을 옮겼다.
와인픽스 성수점. 누메로도스는 돼지군이 찾아낸 식당이었지만 식당으로 가는 길에서야 콜키지프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걸 놓친다면 돼지군이 아니지. 그래서 식당으로 가는 내내 열심히 바틀샵을 검색했고, 대기가 없는 것만 살짝 확인하고 바로 와인을 사러 갔던 것. 생각보다 거대한 매장이라 흠칫 놀랐다. 나라별, 종류별로 분류해 놨는데, 너무 많으니까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식당에서 멀진 않았다. 동선이 조금 꼬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익스큐즈 하지, 뭐.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밀도있게 고심 끝에 고른 건 여기 가운데에 보이는 몬테스 알파 까베르네 쏘비뇽 21. 돼지군은 몬테스알파 와인이 먹어보고 싶었고, 난 까쇼를 좋아하니까 절충해서 선택된 게 바로 이 녀석. 가격을 빨갛게 적어놓은 걸 보니 나름 행사가인 듯 싶기도 하니 딱이다 싶었다.
다시 잰걸음으로 돌아온 누메로도스. 다행히 여전히 한산한 모습이었다. 빨간 날이라도 명절 근처라 오히려 손님이 적었으려나? 공간이 구획 구획 나뉘어 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식사를 하다 보니 테이블이 얼추 다 차는 듯 보였다.
누메로도스는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영업하고, 브레이크 타임은 평일에만 3시부터 5시까지 . 앞서 언급한 것처럼 콜키지는 무료고, 2인당 1병 가능하며, 이용시간은 두 시간이라고. 메뉴는 샐러드와 안티파스토(전채 요리), 피자, 파스타, 리조또로 구성되어 있다. 2만 원이 넘는 메뉴가 없다는 게 인상적이다.
몬테스 알파 까베르네 쏘비뇽 2021 Montes Alpha C/S 2021 24,800원
기껏 포장된 걸 사와서 바로 뜯어버리는 게 조금 아깝다 싶긴 했지만, 먹으려면 까야하니 미련은 접어두고 바로 마실 준비 ㄱㄱ!! 오크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과실향이 마지막까지 힘 있게 남아서 신기했다. 음식과 함께 먹어도 눌리지 않아 좋더라. 스테이크 같은 육류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요즘 음식값뿐 아니라 술값도 많이 비싸져서 와인 한 잔도 만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허다한데, 2만 원 중반에 이 정도 와인 한 병을 식당에서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건 꽤나 큰 메리트.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Dos. Antipasto - Shrimp Canelloni 쉬림프 까넬로니 16,000원. 라자냐면, 새우, 리코타치즈, 시금치, 로제소스, 모짜렐라치즈
바로 이거 때문에 빼빼로데이에 누메로도스 포스팅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튼 길쭉하니까 ;) 내가 알기론 까넬로니는 큼직한 원통형의 파스타였던 것 같은데, 여기에선 라자냐를 말아서 쓰더라. 여러 파스타집들 중 누메로도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라자냐를 팔기 때문이었는데, 라자냐면은 있지만 라자냐를 구워 팔진 않았다. 그래서 메뉴판을 보고는 다소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꿩 대신 닭으로 주문한 쉬림프 까넬로니는 의외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로제소스라 토마토소스의 산미가 부드럽게 누그러져 좋았고, 탱글한 새우가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나 시금치와 함께 까넬로니를 채울 속재료로 충분히 훌륭했다.
Cuatro. Pizza - Mascarpone Pizza 마스카포네 18,000원. 바질페스토, 마스카포네치즈,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치즈
바질페스토를 빼곡하게 채운 마스카포네 피자. 위에 올린 치즈가 마스카포네라 모짜렐라처럼 늘어지거나 찐득하진 않지만, 농후한 바질페스토와 고소하고 부드러운 마스카포네치즈가 썩 잘 어울렸다. 함께 주문한 쉬림프 까넬로니와 확실히 다른 결의 맛이라 좋았고, 둘 다 와인과 잘 어울려 더욱 좋았다.
Seis. RIssoto - Leek Cream Rissoto 대파 크림 리조또 18,000원. 대파, 생크림, 돼지고기, 스모크치즈,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치즈
땔랑 두 개만 먹고 일어나긴 아쉬워 추가 주문한 메뉴. 먹었던 메뉴들과 겹치지 않고 검색해 보니 많이들 먹길래 골라봤는데, 개인적으로 이건 비추. 분명 이탈리안인데 한식의 기운이 물씬 나던 리조또. 밥알은 살아있지만 전반적으로 곰국에 밥 말아서 졸인 느낌;;
결과적으로 가성비 좋은 곳에 가서 안 싸게 먹는 취미는 이 날에도 발휘되어 버렸다 ㅎㅎ
가지그라탕이 대표메뉴라던데... 다음엔 그걸 먹어봐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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