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줄 서서 먹는 고깃집"으로 유명한 집들이 몇몇 있다. 그중 하나가 몽탄의 우대갈비. 미슐랭보다 믿고 보는 블루리본의 추천도 있었고, 검색 결과 나오는 고기 사진들도 퍽 인상적이라 언젠간 꼭 가보자 마음먹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자주 찾는 동네가 아니어서 좀처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남대문시장 쪽에 들를 일이 있어 멀지 않은 거리이니 점심을 맡겨 보기로 했다.
삼각지역 8번 출구 쪽으로 가면 된다길래 지도 앱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나와서 바로 보이는 정도는 아니고, 조금 걷다 보면 발견 가능.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의 외양에 살짝 놀랐다. 고깃집이라기 보단 양식에 어울리지 않나? 새로 만든 것도 같고,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을 것 같기도 한 몽탄의 생일은 2018년 12월이라고. 짚불구이라는 뭔가 시골적 감성 탓에 오랜 전통을 가진 식당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생이라 또 놀라야 했다.
당연히 가장 경이로운 부분은 어마어마한 대기 인파. 비가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날씨 덕에 다소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세상에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지...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지만,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엔 앱을 통한 예약을 하는 식당들도 많지만 몽탄은 직접 방문해서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영업 시작 시간은 12시고, 대기명단은 1시간 전인 11시가 조금 못 된 시각부터 작성을 시작한다. 비 오는 토요일 10시 45분에 가게 앞에 도착하니, 사진에 보이는 줄 선 사람들 중 가장 끝에 설 수 있었다.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나오기까지 총 30분 정도 걸렸고, 명단 작성은 가게 안 카운터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고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2시 반에서 3시 사이였고, 전화받고 15분 내에 명단에 기재한 인원 전원이 와야 한다고 했다. 순서가 되어 이름을 적게 되더라도 임의로 시간을 선택할 수는 없고, 더 뒷 시간에 식사를 원하면 옆에서 기다리다가 그 시간 명단을 작성할 때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한다. 안에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첫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인가 했는데, 원하는 시간 순서가 오길 기다리는 거였다. 저녁을 먹고 싶으면 안에서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판 ;; "몽탄에서 식사하기"가 이 날의 메인이벤트 중 하나였기에 2시 반 대기자 명단에 이름과 전화번호, 인원수를 기재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식당에서 전화가 온 건 2시 40분경. 고깃집이 소요시간 예측이 딱딱 된다는 게 신기하다. 약 3년의 세월 동안 쌓은 노하우인가? 식당 앞에 도착하니 오전과는 달리 한산한 모습이었고, 입구에는 금일 웨이팅이 마감되었다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었다.
아까 대기자 이름을 적었던 곳 옆에서 QR을 찍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가게 안으로 이동. 카운터 바로 옆에 짚불구이의 핵심인 초벌 공간이 있었다.
2층 자리를 안내받아서 올라가면서 빼꼼 구경해볼 수 있었다.
우리 자리는 2층의 도로 쪽으로 난 창가 자리. 테이블 간격이 좁은 편이라 안쪽보단 창가 쪽이 답답하지 않아 좋을 것 같다.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지만 식탁엔 이미 반찬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양파는 통으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앉고 나니 들고 가서 잘라왔다. 얼린 무생채를 자랑스레 올려주기에 '얼린 게 좋은 건가?' 싶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좀 덜 달면 좋겠다 싶지만, 삼겹살과 잘 어울렸다. 왼쪽 종지에 들은 것들은 위쪽부터 청어알 젓갈, 와사비와 다진 명이나물, 소금, 보리된장이라 했던 것 같다.
갈비가 낫다는 얘기가 많아서 일단 갈비만 시켰었는데, 스포를 해보자면 삼겹살이 나았다. 어쨌든 배가 많이 고픈 상태는 아니라서 갈비 2인분에 삼겹살 1인분, 공깃밥 하나 먹었다.
떡이랑 파, 마늘부터 불판에 안착. 떡 구운 거 좋아~
우대갈비 280g 28,000원 X 2 소갈비 중 가장 맛있는 진갈비를 활용한 양념육 (2인분 이상 주문가능)
기대했던 거대한 뼈 고기였는데, 3~4인분 주문한 옆 테이블에 비해 '뼈 밖에 없는 거 아냐?' 싶은 비주얼로 등장한 우대갈비. 초벌이 된 상태라 허여 멀건 해서...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짚불구이라고 지푸라기 위에 석쇠를 올린 건 재밌는 플레이팅이다 싶었다.
큼직하게 잘라서 올려놓으니 더 적어 보이는 고기. 뼈에 살을 많이 남겨두고 자르는 편이라 그런 걸 알고는 있는데, 눈으로 이걸 보고 있자니 심란했다. 1인분 추가는 안 되니까 2인분 추가 각인가 ;;
다 구워줘서 편하다. 워낙 커다란 갈빗대라 안 구워주면 난감하긴 할 것 같다.
사진들에서 수없이 본, 뼈 위에 가지런히 쌓인 고기들. 더 많이 시켜야 산처럼 쌓이는 거였구나. 측면에서도 찍어줄걸. 먹느라 바빠 깜빡해버렸다 ㅎㅎ
메뉴판에서도 본 것처럼 몽탄의 우대갈비는 양념육인데, 생각보다 간이 셌다. 짭짤한데, 그보다 많이 달았다. 이게 덜 달아진 거란 소문이 있다던데, 원래는 대체 어땠다는 겨?;; 찬도 달달한 게 많아서 더욱 애매했다. 원래는 볶음밥을 먹어볼 요량으로 갈비를 2인분만 시킨 거였는데, 볶음밥마저 달다는 소문에, "갈비보단 못하다"고 입을 모으는 삼겹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짚불삼겹살 150g 15,000원 전남 무안군 몽탄면 전통음식인 짚불삼겹살을 재해석한 삼겹살
온 김에 먹어보자 해서 시킨 삼겹살. 원래 몽탄은 전남 무안군 몽탄면의 전통음식인 짚불 삼겹살에 착안하여 낸 가게라 했다. 거기는 얇은 삼겹살을 쓴다는 것 같은데, 몽탄의 짚불 삼겹살은 두툼~하다. 기름이 많은 편인 듯.
두께가 있어선지 생각보다 굽는 데 시간이 제법 소요됐다.
삼겹살은 노릿노릿 구워야 맛있지~ ;)
"짚불"삼겹살이라더니, 진짜 훈연한 향과 맛이 나서 인상적이었다. 어딘지 햄 같긴 한데, 확실히 고기! 훈제보다는 그냥 생고기 바로 굽는 게 더 취향이긴 하지만, 이 날 먹은 갈비랑 삼겹살 중엔 삼겹살이 단연 나았다. 새콤달콤 혹은 짭짤달콤 반찬들이 삼겹살과는 어울렸다.
공기밥 1,000원, 참이슬/처음처럼/진로이즈백 5,000원
밥은 그냥 그랬지만, 밥이랑 먹는 고기는 의미가 있으니까. 사진은 없지만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술은 처음 먹은 갈비보단 삼겹살과, 그리고 마지막에 뼈 발라 나온 마지막 갈빗살들과 잘 어울리는 듯 했다.
삼겹살을 먹고 뼈에 있는 살들을 해체해서 마저 구웠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더라. 근막 때문에 질길까 봐 그런 건지, 느끼할까 봐 그런 건지, 앞서 고기들과는 달리 자잘하게 잘라주시더라.
뼈 근처에 있는 살이라 양념이 덜 밴 덕인지 덜 짜고 덜 달아 좋았다. 원래 뼈에 붙은 살은 안 먹는 편인데, 이건 제법 열심히 주워 먹었다.
엄청난 웨이팅을 각오한 덕에 30분 기다리고 3시간가량 늦은 점심을 먹었음에도 그렇게 심하게 기다린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요즘 앱을 통해 예약하는 가게들 중 유명한 곳들은 원하는 날짜를 눌러보지도 못하고 광탈하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인간적이랄까? 음식이 마음에 든다면 가끔은 감내할만하지 싶다.
처음 갈비 한 입을 먹었을 땐 의아했다. 이걸 굳이? 그냥 짭짤하고 많이 단 두꺼운 갈비 아닌가? 뒤에 주문해서 먹은 삼겹살이 낫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먹을 건가? 게다가 다들 갈비가 낫다던데? 마지막에 구워준 게 재밌긴 했지만... 글쎄? 직원들이 친절하고, 다 구워주니까 편하긴 했지만, 음식 자체가 내겐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이번 식사의 결론은 "언젠가 전남 무안에 가서 짚불 삼겹살을 먹어보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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