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처에 숯불에 닭고기를 구워 먹는 걸로 유명한 집이 있다 하여 찾아봤다.
차를 타고 지나는 중에 차도 방향으로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기이해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갈 곳이 여기였다. 입구 옆, 간판 아래에서 기계를 통해 대기 등록을 할 수 있어서 내내 여기 앉아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저 많은 사람이 대기인원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웨이팅을 각오하긴 했지만, 직접 보니 상당한 인파였고, 근처 카페에서 마저 기다려서 먹을지, 다른 델 갈지 고민이 됐다. 걸어오던 중 본 백송이란 식당도 유명하다고 했는데, 손님이 없어 보여 더욱 고민이었는데, 자주 오는 동네도 아니고, 다음에 왔을 때 대기가 더 짧으리란 보장도 없고, 먹어 보기로 했으니 마저 기다려 먹어 보는 걸로.
1시간 번뇌의 시간 이후 부름을 받고 도착한 식당은 사람들이 빼곡했다. 테이블이 몇 개 없어 천천히 빠지나 보다 했는데, 저 안쪽에 벽을 터서 만든 공간이 더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한 시간 만에 먹는 거겠지?
우리는 대기 손님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제일 앞쪽 창가 자리로 안내받았다. 내 발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투명한 유리 상. 말끔해 보이려면 항상 뽀득뽀득 잘 닦아둬야겠다.
양념구이보단 소금구이를 선호하니까 메뉴는 이미 소금으로 정해놨다. 나머진 일단 먹어보고 내키는 대로!
대선 6,000원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래도 괜찮게 마시는 대선. 도수가 낮은 소주는 느끼해서 더 역한 경우가 많은데, 이건 깔끔하니 괜찮아서 마음에 든다. 달아서 그런가도 싶었는데, 다른 소주라고 안 달지 않은데, 신기하다.
테라 5,000원
소주를 더 시키기엔 부담스러워 시킨 맥주. 원래 맥주를 안 좋아하지만, 테라는 어딘지 옥수수 맛이 난달까? 내 취향 아님.
숯불구이를 위한 숯불 등장.
소금 숯불 닭구이 220g 12,000원 x 2
일반적이라면 소금과 양념 1인분씩으로 시작했겠지만, 은화계 첫 닭구이 메뉴 주문은 2인분 이상부터 가능해서, 소금구이 2인분을 주문했다.
전문가의 손길.
초벌을 해서 나오지만, 그렇게 금방 익지는 않아서... 게다가 이미 오랜 시간 기다려서 현기증 나.
그래도 숯불에 닭을 굽는데 맛없을 순 없을 거란 굳은 믿음으로 인내심 장전.
소금과 와사비, 그리고 유자 후추에 고추를 섞은 듯한 저 양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노노재팬 이후 가장 아쉬웠던 게 유자 후추를 먹지 못하는 거였는데, 덕분에 실컷 먹었다.
저것만 있으면 어떤 기름진 음식도 안 질리고, 상큼하게 끝까지 먹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리기 힘든 맛.
어렵게 들어왔는데, 겨우 소금구이 2인분 해치우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추가 주문을 감행했다.
닭갈비 치즈볶음밥(1인분) 6,000원
양념 숯불 닭구이 양념으로 추정되는 매콤한 양념을 한가득 묻힌 볶음밥. 기대가 컸는데, 나쁘진 않은데 가성비가 가장 떨어졌다. 양도 그렇고, 고기 함량도 아쉽고. 게다가 생각보다 매웠는데, 마늘이 첨가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요 소스랑 먹으니 그나마 괜찮았다. 잘 쳐줘도 3천 원이면 먹어볼 용의가 있지만, 그 이상은 비추.
생닭목살 180g 14,000원
돼지군이 구미가 당길 줄 알았더니, 역시나 주문한 생닭목살. 그냥 메뉴 이름만 쓰여있어도 혹 했을 텐데 "입고 직원문의"라고 버젓이 쓰여 있으니 안 시키고 배길 수가 있나. 목살이 뼈 없이 말끔하게 나온 게 신기하긴 하지만, 식감도 그렇고, 향이나 맛이나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덕분에 돼지군이 모조리 독차지할 수 있었다.
중화닭날개튀김 11,000원
역시나 아쉬워 시킨 중화닭날개튀김. 그냥 구색이나 맞출 요량으로 끼워 넣은 메뉴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본격적이었다. 우리나라 치킨은 워낙 맛있어서, 외국식을 표방하는 닭요리는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이건 정체성도 확실하고, 맛도 짭조름하면서도 이색적인 게, 지금까지 먹던 것과 결이 달라 좋았다. 숯불 닭구이를 먹고 배가 덜 찼다면 볶음밥 보단 이걸 먹어보길 추천!
웨이팅이 무시무시하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당장 또 기다려 먹겠냐고 묻는다면 그러겠다기엔 부담스럽지만, 이따금씩 그걸 감수하고라도 먹어보긴 할 것 같다. 그러니 괜찮았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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