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 키친 FABRIZIO'S KITCHEN 이태리 가정식 전문점 - 판자넬라 디 뽈포 + 리조또 아이 풍기 + 파스타 리모네 에 감베리 + 마얄레 알레 에르베 + 콥파 쵸코라또 에 푸루따/ 잔술(스파클링 와인 2종, 레드와인, 하이볼)
와인킹 팝업스토어 방문 후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파브리 키친.
용산역에서 드래곤힐스파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그리 멀지 않아 찾을 수 있다. 용산역 주변에 먹을만한 식당이 뭐가 있나 검색하면서 봤던 식당 중 하나인 미미옥 근처더라. 파브리 키친도 줄 서는 집이라고 들었는데, 날씨 탓인지 몰라도 미미옥 웨이팅이 더 험난해 보였다. 어릴 적부터 방아를 좋아해서 방아 샤브샤브도 구미가 당겼는데, 저렇게 사람들이 몰릴 정도로 대중적일까 싶긴 했다. 미미옥은 여기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언젠가 비교적 널럴해보이는 데서 한번 먹어봐야지.
잔인한 5월의 흔한 빨간 날다운 폭우를 뚫고 도착한 파브리키친. 밤에나 많이 올 거라던 비는 오후부터 이미 쏟아지는 중이었고, '아무리 그래도 사진에 보이겠어?' 싶었는데 사진에서 빗소리가 들리는 듯한 지경이니, 확실히 보통 비는 아니었다. 식당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땐 이미 이 달 예약은 마감이어서 당장 가려면 워크인 밖에 방법이 없었다. 따로 이것만을 위해서 오기엔 몇 시간씩 기다렸다는 후기들에 지레 겁을 먹었는데, 마침 근처에 와있고 저녁 영업 시작 시간에 맞춰 갈 수 있겠다 싶어 한번 가보기로 했다. 전화로 문의하니 저녁 대기 등록은 기계를 가게 밖에 꺼내놓는 4시 55분부터 가능하다 하셨고, 50분쯤 식당에 도착해서 그 주변을 서성이다가 기계를 꺼내놓기 무섭게 첫 번째로 웨이팅을 걸었다. 앞에 0팀이긴 해도 바로 자리가 나겠나 싶어 근처 카페에 갔는데, 오픈하고 10분도 채 못된 5시 7분에 입장 알림이 왔고, 이제 막 마시기 시작한 커피를 황급히 챙겨 부랴부랴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딱 봐도 서양인스러운 아저씨. 원래 이탈리아 요리사고, 방송 출연도 하고, 이태리 파브리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신다고.
예약도 꽉 차고, 대기시간도 길다기에 식당이 굉장히 좁은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단 규모가 있었다. 찾아보니 더본코리아와 LG유플러스와 협업으로 오픈한 매장이라고. 그래서 용산이었을까? *엘지유플러스 본사는 한강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들어오면서 식당 소개를 하던 모니터랑 식당 벽면에 붙어있는 모니터 화면이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장사천재 백사장님의 손길을 거쳤다니 확 납득이 갔다.
별 기대는 없었는데, 주방에서 본업 중이신 파브리님 등장. 입구에서 봤던 흑백사진보다는 훨씬 슬림한 모습이라 다른 분인가 했는데, 돼지군이 저 분이 맞다더라. 컬러 사진이었으면 같은 사람으로 보였으려나? 요리하느라 바쁘시니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겠다 싶었는데, 틈틈이 주방을 벗어나 홀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팬서비스도 유쾌하게 해 주셨다.
네컷에 조련된 덕에 순식간에 세 컷 클리어 (^ㅅ^)v
주문은 자리에서 태블릿으로 하고, 계산은 나갈 때 카운터에서 하는 시스템. 서빙로봇이 한 대 보였는데, 음식은 직원이 직접 가져다주시더라. 아무래도 외국음식인 경우에 메뉴 이름만 적혀 있으면 자주 먹지 않은 사람은 주문에 어려움을 겪을 텐데, 사진과 함께 이름, 직관적인 짤막한 설명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좋아 보였다. 덕분에 겹치지 않게 두루두루 주문.
와인도 이름과 설명이 자세히 적혀 있었고, 제법 여러 종류를 잔으로 판매하고 있다. 최근 오랜만에 롤링파스타를 찾았는데 마침 그 매장엔 와인이 하나도 없다기에 실망스러웠는데, 이번에 한풀이 제대로 했다 ㅋ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면서 와인을 마실 때면 보통 초반엔 화이트, 중후반부터는 레드를 마시면 좋겠다 싶은데, 병으로 주문하려고 하면 좀 애매하다. 물론 같은 양이라면 병으로 마시는 게 합리적이겠지만, 식사에 가볍게 곁들이기에 둘이서 와인 각 1병은 다소 밸런스가 무너지는 느낌이라... 게다가 하우스 와인으로 레드 하나, 화이트 하나 정도만 구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직접 종류를 골라 마실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편하게 마신다면 세 잔 정도가 딱이긴 한데, 음식을 욕심내는 바람에 두 잔으로 마무리했다.
체리색 테이블 위에 분홍빛 체크무늬가 귀염뽀짝한 오늘의 저녁 상. 캐리커처가 여기에도 있었구나.
식전빵과 피클이 먼저 나왔는데, 리필은 안 된다고 했다. 셀러리 향이 짙게 밴 피클이라 아쉬울 건 없었다. 꼬소하게 빵을 뜯어먹는 사이 음료가 먼저 나왔다.
프루노토 모스카토 다스티 1 glass 9000원. 카사비앙카 아솔로 프로세코 스페리오레 엑스트라 드라이 1 glass 7,000원
포트와인을 좋아하는 나라면 좋아할 거라 했던 모스카토,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의 아스티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은 모스카토 다스티란다. 역시 달달한 게 마음에 들었다. 드라이 시렁.
판자넬라 디 뽈포 9,500원. 구운빵을 곁들인 상큼한 문어샐러드
판자넬라는 원래 오래돼서 말라버린 빵을 먹기 위한 방법이었다나? 딱딱한 빵을 토마토 등과 드레싱을 섞어 버무려뒀다가 먹는 거라 해서 큰 기대는 없었는데, 의외로 이번 식사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다. 눅눅한 식감을 싫어하는데, 부드러운 문어와 사워크림, 그리고 각 재료들이 조화로웠다. 이태리 가정식이라더니, 진짜 집에서 커다란 볼에 잔뜩 해놓고 꺼내먹기 딱인 메뉴.
파스타 리모네 에 감베리 17,000원. 상큼고소한 레몬버터 파스타
레몬버터와 새우로 설명이 끝나는 파스타. 레몬 껍질까지 고명처럼 얹어서 레몬향이 물씬이라 버터가 흥건한데도 상큼하다. 두 가지 음식을 먹다 보니 새삼 레몬버터와 사워크림은 발상이 닮았구나 싶었다.
마얄레 알레 에르베 22,000원. 허브향 가득 돼지안심 요리
전반적으로 파피요트 같았던 돼지고기 요리. 돼지 안심 치고 부드럽게 조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퍽퍽한 편이라 닭을 쓰는 편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미상 하이볼 6,000원. 제주 감귤로 만든 전통주 미상 하이볼 + 로 스파로소 1 glass 9,000원.
"감귤"을 기대하면 실망이 큰 미상 하이볼. 오크 처돌이로서 마음에 들었던 로 스파로소. 달큼하면서도 힘 있는 레드와인.
리조또 아이 풍기 16,000원. 포르치니 버섯 크림 리조또
죽이 아닌 게 확실한 쌀의 익힘 정도가 좋았다. 요즘은 버섯 크림 리조또엔 트러플 오일을 두르는 게 일반적인데, 그런 터치가 없는 게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퍼지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질퍽한 질감인 음식에 후레이크를 곁들이니 덜 물리고 재밌게 먹을 수 있었다.
콥파 쵸코라또 에 푸루따 7,000원. 사워크림이 올라간 시그니처 초콜릿 아이스크림
사워크림이 올라간 디저트라니, 사워크림을 과일이랑 초코랑 함께 먹는다니... 호기심으로 주문했는데, 전혀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져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크림에 초코까지 더해서 퍼 먹는 만행. 진정 이래도 괜찮은가 ㅋㅋ 그나저나 이 집 사워크림 맛있네. 어쩌다 보니 사워크림 수미쌍관.
파브리님의 유명세도 있겠지만, 진짜 이탈리아 요리사가 하는 이태리 음식점임에도 평균을 밑도는 가격 덕에 더욱 인기인 파브리 키친이라는데,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를 반복하며 이것저것 먹어대다 보니 식사값은 십만 원을 넘겨버렸다. 그래도 무지성으로 먹은 거 생각하면 이 정도면 선방이지. 메뉴가 많은 편은 아니라 이렇게 먹고 나니 먹을만한 건 얼추 다 먹은 듯싶지만, 혹여나 다음에 갔을 때 메뉴 변동이 없는 경우를 대비해 미리 구성을 짜 보자면 파타테 에 프로볼라(감자수프)랑 PPP파스타(크림파스타), 폴페띠 알라 루챠나(토마토 쭈꾸미 조림) 정도가 적당하지 싶다.
"이태리 가정식"을 표방하는 식당답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식사였다. 눈이 뜨일 정도로 맛있다곤 못하겠지만, 끄덕이며 먹게 되는 음식들이었다. 솔직히 몇 시간씩 기다리진 못할 것 같고, 이렇게 오픈 시간 맞춰 가서 눈치를 보든지, 미리 예약을 하고 가든지! 어쨌든 음식도, 사람도, 기계마저도 친절한 식당이었다. ('~` ) 상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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